드디어 뉴욕5건축의 마지막 글입니다. 피터아이젠만과 존헤이덕에 대해 조사했던 내용인데 참 풋풋하네요.

오래되고 요새 잘 보는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참고하여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_뉴욕5건축(Newyork 5) 건축가 및 사례분석-2

라.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

New York 5를 주도하였던 피터 아이젠만은 1932년 뉴욕에서 출생하여 코넬대학과 콜럼비아 대학을 졸업하였고,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론파 건축가이다. 그는 바우하우스 운동을 주도했던 그로피우스의 건축가협동체(TAC)를 위해 이미 1957년부터 2년간 활동한 바 있으며, 근대주의 건축과 예술이 한창 꽃피던 1960년대 후반에 30대 중반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근대주의 이념이 예술과 건축에 깊이 각인되어 있던 시절에 건축가로서의 성장기를 거쳤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New York 5를 주도하고, 자신들의 건축관을 방어하기 위한 이론적 무장을 철저히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교육과정과 성장과정에서의 사회현상과 그 맥이 닿아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967년에 뉴욕에서 건축도시연구소(IAUS)를 개설하고 1982년까지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며 세계 건축계의 이론적 흐름을 주도하고 다양한 건축적 논쟁과 담론을 담은 ‘Oppositions’라는 기관지를 발행함과 아울러 정방형 평면에 바탕을 둔 다양한 주택을 건축적으로 실험하며 ‘House Ⅰ, Ⅱ, Ⅲ, Ⅳ, …,Ⅹ’ 등의 실험주택과 그 이면의 건축적 이론을 꾸준하게 발표한 바 있다. 1980년대 이후 그는 10여년간의 건축적 실험과 성과에 기반한 새로운 작품들을 설계하여 세인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 이론가이자 건축가라는 양면적 직능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명성이나 영향력에 비해 작품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대신에 그는 학자다운 면모를 더욱 중시하여 캠브리지, 프린스턴, 예일, 하바드 등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강의를 맡고 있으며, 일리노이대학과 오하이오 주립대학 등에도 출간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의 주요 작품으로는 웩스너 시각예술센터(1982-89), 고이즈미 조명회사 사옥(1987-89), 콜럼버스 컨벤션 센터(1989-93), 1991년 P/A 어워드를 수상한 신시내티 예술대학 증축계획, 베를린 국제건축전을 통해 건설된 집합주택과 막스 라인하르트 하우스 등을 꼽을 수 있다.

1) 피터 아이젠만의 건축 언어

“케네스 프람톤(Kenneth Frampton)에 의한 다섯가지의 현대건축 발전경향” 중 피터 아이젠만의 건축은 “구조주의(Structuralism)”에 분류되고 있다. 그리고 포스터 모던(Post Modern)건축에서 보여지는 팔라디오(A. Palladio)의 건축을 모범으로 역사․고전․절충적이며, 동시에 비 기계적적인 것에 반해 아이젠만의 건축언어는 역사적이며 고전적인 것을 부정하며 어느 정도 기계적인 경향을 갖는다. 따라서 초기의 아이젠만의 건축언어는 포스트 모던건축에 약간의 일면성을 가진 레이트 모던(Late Modern)으로 분류된다. 여기에 아이젠만의 건축은 해체적 경향을 갖는 복합적인 건축개념을 지니고 있다. 또한, 건축의 요소들을 언어작용의 시스템으로 간주하여 언어로서 문장이 구성되듯이 건축형태의 생성과정을 연구하는 통사론을 전개․탐구하고 있는 건축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아이젠만은 이러한 체계적․형식적․개념적인 건축 작업을 하여 현대건축 발전에 지적인 자극을 계속 제공하고 있다.

가) 피터 아이젠만의 건축 배경

아이젠만은 르 꼬르뷔제(Le Corbusier)와 쥬제페 테라니(Giuseppe Terragni)의 건축을 추종하고 합리주의나 구조주의의 범주이며, 형태적 측면에서는 탈 기능주의(Post Functionalism)를 수용한다. 특히 르 꼬르뷔제의 순수주의(Purism) 형식의 결과로 나타난 사보아주택, 그리고 쥬제페 테라니의 기념비적 지표이며 “고전주의(Classicism)와 순수주의(Purism)의 형식인 까사 델 파쇼”는 근대건축이 지향하는 기능과 합목적성의 충족 이외에도 공간, 구조, 에워쌈 등의 시스템으로 발산하는 순수한 모티브를 건축적 형태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요소들은 아이젠만의 초기작품에서 주택건축형식의 기본이 되고 있다.

그리고 건축을 언어차원으로 구성하려고 시도한사람은 알베르티부터 시작하여 근대의 르 꼬르뷔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건축이론가들이 건축을 언어와 같이 생각하고 이론을 전개하여 자기의 건축작품을 설명하였다. 그 결과로 근대건축은 새로운 상징으로 기계를 내세웠지만 그 체계적인 전개와 문법적인 구조를 창출하지는 못했다. 이를 바탕으로 아이젠만은 새로운 질서와 언어학적인 창조를 시도하고자 통사론의 논리적인 질서 속에서 건축의 문법을 이용하여 건축이 어떻게 구성되는가 하는 원리를 발견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리고 촘스키의 언어모델을 건축에 적용하여 외적창조와 의미전달에는 무관한 근본적인 건축법칙인 심층구조와 표면구조라고 하는 통사론에 고립화시켜 검증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나) 아이젠만 건축작품의 기본방향

아이젠만은 자기계획안에 대하여 인간이 갖는 관습적인 모든 의미를 소거하는 작업부터 시작된다. 이 행위의 근저에 있는 지금까지 인간이 알고 있는 세계나 문화적 저장고로서의 과거와의 단절을 기도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건축철학을 글쓰기 행위로 확실하게 드러내어 기호로 표현되는 언어게임과 형태게임을 오가며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차이라던가 실험정신, 도전의식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으며, 다양한 운영방법을 조화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념을 전달하는 현실성 있는 해결방법을 제시한다. 또한, 심사숙고하는 지적탐구를 통해서 볼륨 내․외부의 파열, 사이라는 개념, 지우고 다시 쓰는 기법, 기하학적이고 유기적인 운동이 축조된 텍스트와 작품의 기본성격을 인식하는데 필요한 도구이다.

인터뷰 발췌

..“뉴욕의 5인”으로 맨 처음 거론되었을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십시오.

…. 당시는 매우 이상한 때였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학생들의 데모가 있었죠. 사람들은 “하이 아트(high art)건축에 대해 매우 거부적었습니다. 처음에 소위 ”5인의 건축가“가 모인 것은 전 세계가 유럽의 모더니즘, 즉 형식주의에 반대하는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회적인 계획을 원했죠. 매우 쉬운 일이었습니다. 즉, ”5인의 건축가“가 힘을 합치면 어려워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건축분야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미국의 상황에 대해 정말 반대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적으로 만났고. 우리가 책을 낸 것은 우연일 따름이었습니다. 그 책은 우리들이 만나 건축에 관해 서로 이야기한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책이 사람들에게 그다지 많은 흥미를 불러 일으킬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첫판은 5천부 정도 인쇄하기로 하였습니다. 책은 우리가 인쇄하였습니다. 즉, 우리가 인쇄비를 댔다는 얘기죠. ”5인의 건축가“는 다른 스토리입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하나의 그룹으로 생각한 적이 결코 없지만 이러한 정체성에서 피난처를 구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개성이 다르나 건축을 함께 토의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선생님의 그룹이 콜린 로우(Colin Rowe)와 같은 역사가와 관련되어 있고, 또 그레이 그룹(the Gray Group)이 빈센트 스컬리(Vincent Scully)나 로버트 벤츄리(Robert Venturi)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무슨 동기로 역사적인 문제들을 돌아보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 두 그룹간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항상 역사를 주시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로버트 스턴과 같은 건축가와는 다른 종류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마이클 그레이브스(Michael Graves)가 “5인의 건축가”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뉴욕의 5인”은 르 꼬르뷔지에, 미스 반데로에, 테라니, 팔라디오등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영국의 전원주택이나 로버트 스턴과 스컬리 등이 얘기하는 “Shingle”스타일은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즉, 우리의 관심은 매우 달랐죠. 우리는 합리적이고 교훈적이며 논쟁적인 건축을 주목했습니다. 그런데 스턴과 그의 그룹은 보다 개방적이고 보다 이해하기 쉽고 보다 수용적인 건축에 관심이 있었죠. 역사에 대한 서로의 생각이 매우 달랐습니다.

피터 아이젠만은 New York 5 건축의 지적인 형성 배경인 통사론적 구조의 이상론적인 성향을 가지는 건축가이다. 그것은 당시의 사회적인, 문화적인 언어를 통한 전통적인 상징체계들을 완전히 배제시키고 공간의 구조체 자체의 수학적인 논리체계를 통하여 건축물이 형성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젠만의 이러한 건축적 개념의 의도는 여러 가지 현실적 괴리에서 오는 모순으로 인하여 몇 개의 주택 프로젝트만 완성되어 남아있다. 아이젠만의 이러한 이상적인 건축적 의도는 하나 또는 두 개의 육면체를 겹치거나 회전시킬 때 생겨지는 좌표를 분석, 분해하여 다시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조형적인 결과들을 구조체로 발전시켜 나간다. 따라서 이러한 조형구조의 상하. 좌우의 움직임을 통하여 천정과 벽체, 그리고 벽체와 벽체가 서로 일탈되거나 겹쳐져서 생겨지는 겹구조 개념이 프로젝트의 계획단계의 도안이나 모형, 그리고 완성된 건물에 나타나고 있다.

2) 연대별 작품 분석

가) 1970년대의 작품분석

House을 시작으로 한 10여년 동안의 아이젠만의 작품은 주로 주택작품이며 르 꼬르뷔제의 사보아주택(1932)이나 쥬페테 테라니의 까사 델 파쇼(1932)에 나타난 순수주의의 영향을 받은 규범하에서 진행된 디자인적 특성을 보여준다. 초기의 작품에서 수평․수직의 그리드를 내포한 입방체에서 출발하고 있다. 후속 작품에서 이러한 입방체와 그리드가 분리된 개체의 재 조합된 구성으로 나타나며, HouseⅥ에서는 삭제된 그리드와 벽의 스퀸스를 이용한 공간이나 형태가 나타난다.

특히 HouseⅩ에서는 공간을 4부분으로 블럭화 시켜 매스간의 긴장을 강화하고 전체와 부분의 무한변형을 통하여 나타난 최종적인 결과물이다. 그리고 Cannaregio Town Square – House11A에서 나타난 오브제들은 HouseX의 분화된 블럭의 형태에서 발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1970년대의 아이젠만의 작품은 주택작품에서 체계적이고 형식적이며 개념적인 건축작업으로 폭넓은 이론을 전개하려는 그리드나 비례가 기본이 된 건축형태가 도출되고 있다.

(1) House II, Falk house Architect Peter Eisenman (1932-) Construction date 1969-1970 Location Hardwick, Conneticut

진입동선의 일상적인 태도에서 탈피해서 기둥과 벽의 혼재된 상태를 분해하여 다시 세밀한 입체적 구성을 시도하며 완전한 형태추구를 위해 기능이 없는 공간을 부가하는 점등이다. 중심층 구조(보는 관점에 따라 한 물체를 다르게 볼 수 있는 구조)가 나타나는데 이 건물을 북쪽에서 바라보면 내력벽이 기준면이 되고 기둥은 이 기준면 사이의 나머지로 인식되고, 반대로 남쪽에서 바라보면 기둥이 심층 구조를 이야기해 주는 기준이 되고 내력벽은 기둥 사이를 채운 면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1967년 주택 1호에서부터 주택 8호에 이르기까지 아이젠만의 설계과정은 정육면체를 사용하여 복합성과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선적인 관례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건축이란 예술의 존재는 주택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건축의 전제는 확실히 건축에 있는 것이다. 건축은 주거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 라는 그의 말과 일반적으로 대지의 명칭이나 건축주의 명칭을 따라 건물의 명칭을 붙이는 것과는 달리 자신의 설계과정을 나타내는 숫자로 건축의 명칭을 붙이는 것(House I, House II, House III…) 에서도 아이젠만이 건축의 자율성에 입각해서 전반기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터 아이젠만 House 시리즈

나) 1980년대의 작품분석

70년대의 그리드와 입방체의 분리와 조합된 변화 그리고 블록형식 조합의 다양한 건축관을 토대로 한 80년대는 아이젠만의 작품에 있어서 그리드의 구축적 건축제약이 해체되어 가면서 더욱 자유로운 디자인적 전개가 이루어진다.

IBA Social Housing에서는 도로축과 일부 평면축을 어긋나게 조합하여 컨택스트와 상징성을 해결하고있다. 이것은 공동주택에서도 70년대의 주택작품에서 나타나는 입방축과 그리드축을 어긋나게 한 보편적인 방법을 취하고 있다.

Romea & Juliet Castles, Biocentrum, Uniuer- sity Art Museum, Koizumi Sangyo에서는 역사적 과정이나 사물의 논리적 사고를 분석 활용한 바탕의 건축공간이나 형태가 창조되고 있다. 이러한 바탕의 소재는 70년대와는 새로운 것으로 건축의 행위를 관련된 역사의식이나 과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논리를 전개하여 작품을 도출하고 있다. Wexner Center는 입체 그리드를 이용하여 기존의 공간과 새로운 공간을 연결하거나 완충하고 있으며, Carnegie Mellon Research Institute는 한 쌍의 입방체를 겹치며 나타나는 형태와 보이드 솔리드의 공간을 창조하고 있고, Guardiola House는 HouseⅩ에서 연구된 L자형상의 매스조합을 발전시킨 형식임을 알 수있다. 이러한 3가지 건축작품은 70년대의 건축형식을 더욱 발전시킨 개념이며, 그리드의 효과나 서로간의 매스가 겹치면서 공간이나 형태가 투사되는 느낌을 주고 있다.

Aronoff Cente, Greater Columbus Convention Cente, Cooper Union Student Housing은 자유로운 곡선의 매스나 사선적 개념이 포함된 매스를 서로 겹쳐서 나타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단일의 형이상학적 구획이나 형태에서 벗어나며, 여러 가지의 건축주변의 상황을 수용하고 있으며, 기능적 공간이 어울러진 심층구조의 매스가 투사되어 보이는 효과를 주고 있다.

따라서 1980년대의 아이젠만의 작품에서는 70년대의 건축작품을 여러 가지의 개념과 결합하여 발전적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건축 주변의 상황이나 관련된 구조적인 언어를 치환하여 건축에 복합된 개념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디자인 요소도 자유곡선이나 사선적 매스가 서로 투사되는 형태요소가 도출되고 있어 형태의 변이과정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 1990년대의 작품 분석

1990년대에는 80년대에 새롭게 나타난 건축의 주제와 관련된 역사의식이나 과학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논리의 전개방법을 더욱 함축하여 발전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Groningen Music Video Pauilion는 비디오 스크린에 나타난 주사광선과 유사한 경로를 동선과 입면에 반영하였고, Nunotani Office는 일본의 지진과 관련하여 암반들이 겹치며 생기는 표면파의 움직임을 은유적으로 기록한 상징물이다. Rebstack Park Master Plan은 물질을 구성하는 주름을 그리드와 교차하여 공원의 마스트 플랜을 발전 시킨것이며, Emory Center for the Arts는 음악적 파장에의한 개념 다이어 그램 시리즈를 건축형태에 적용하고 있다. 그리고 Nordliches Derendorf Master Plan은 전파의 간섭을 감안한 건축의 형태를 도출하였고, Bahnhofsbereich Friedrichstrasse는부지의 과거․현재․미래가 교감하는 틀을 제시하고 있으며, Max Reinhardt Haus는 독일 고유의 기질과 포부를 이미지화 하였고, Haus Immendor는 해안에서 발생된 물결의 솔리돈 파를 형태화 하고 있다. Magdeburg Damaschkeplatz는 부지가 앉고있는 지리학적 특성으로 형태를 도출하였고, Klingelhofer Housing은 도시블럭의 시각을 발전시킨 주거단지이다. Monument and Memorial Site는 부지상황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세 요소의 레이어를 배치하여 논리적으로 전개한 작품이며, Church of the year 2000은 성지순례의 성격을 건축물에 연관지어진 통로로서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

따라서 1990년대의 아이젠만의 작품에서는 도시계획이나 단지계획에 관련된 작품들이 많이 도출되고 있으며, 여기에는 주로 과거의 흔적이나 역사를 변이된 현재나 미래에 반영하는 건축주제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건축물에 내재된 주제를 적극적으로 폭로함으로서 건축에 존재하는 본원적 딜레마를 강력하게 규명하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마. 존 헤이덕(John Hejduk)

그는 1929년 New York 출생으로 1950년 Cooper Union, 1952년 Univ. of Cincinnati, 1953년 Harvard Univ., 1954년 Univ. of Rome에서 교육받았으며, 직업적 경력은 다음과 같다.

– 네덜란드계 미국인으로 1929년 뉴욕에서 출생

– 1947~1950년 쿠퍼 유니온에서 건축 전공 (이 기간동안 뉴욕의 여러 설계사무소에서 실무 경험)

– 1952년 신시네티 대학에서 B Arch

– 1953년 하버드 대학원에서 M Arch

– 1954년 로마 대학에서 강의

– 1954~1956년 텍사스 대학에서 강의

– 1956~1958년 I. M. Pei 사무소에서 실무

– 1958~1960년 코넬 대학에서 강의

– 1961~1964년 예일 대학원에서 강의

– 1964년 쿠퍼 유니온 전임 교수

– 1965년 뉴욕에서 개인 사무소 설립

– 1969년 뉴욕5의 일원으로 첫 전시회

– 1975년부터 쿠퍼 유니온의 학장으로 역임(타계하기 한 달 전인 2000년 6월까지 25년간 역임)

– 2000년 7월 3일 뉴욕에서 암으로 별세

1) Hejduk의 건축 개념 – 양식적 측면

가) Neo-Modernism

모더니즘 공간 모델의 차용 / 재해석 등을 통해 건축적 실마리를 찾았던 헤이덕의 건축은 네오 모더니즘으로 분류할 수 있다. Le Corbusier의 신봉자였던 I. M. Pei의 사무실에서 실무를 하는 동안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나) Minimalism

기하 입방체의 중첩에 의한 복합 공간 구도의 형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헤이덕의 건축을 미니멀리즘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다) Narrative Architecture

헤이덕은 1975년 ‘Graveyard for the Asbes of Thoughts’라는 드로잉 작품과 함께 신화 해석에 기초한 설화 건축으로 전환하고 있다.

2) Hejduk의 건축 개념 – 방법론적 측면

가) 아방가르드 공간 모델의 차용 (다양한 육면체 원형 단위의 차용)

헤이덕은 Le Corbusier의 큐비즘 공간 모델, Mondrian과 Doesuburg의 마름모 형태, de Stijl의 선형 좌표, Mies의 슬라이딩 패널을 이용한 오픈 플래닝, Terragni의 합리주의 모델, Wright의 좌표적 공간 분절 모델 등의 차용을 출발점으로 한다.

나) 구체적 조형 전략에 의한 창조적 재해석

헤이덕은 아방가르드 공간 모델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여 변용하는데 있어서 기하 형태 자체에 대한 조작을 최소화하여 완결된 기하 형태의 윤곽을 유지하면서 기하 입방체의 반복에 의한 상호 간의 조합적인 관계 형성하고 그 기하 입방체 자체 내에서 점, 선, 면을 분할한다.

다) 상징화 과정을 통한 상징체계의 표현

헤이덕은 기하 조작에 위상적 관계를 대응시키고 공간 구조 속에서의 기하 충돌, 미로, 좌표, 질서, 매스 대립, 빛 조작 등에 의한 복합 공간을 생성하여 인간의 존재 문제에 대한 형이상학적 고민을 표현한다.

3) 계획안 분석

헤이덕의 건축은 매우 관념적이어서 실현된 것은 극히 드물다. 그의 건물은 기능과 생활을 고려한 실제 공간이라기보다는 건축가의 형이상학적 고민을 표현하기 위한 개념적 공간에 가깝다 하겠다. 건축적 내용에 있어서도 부지와 주변 환경이 주어지지 않은 채 종이 위에 행해지는 기하 작도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3차원적 실제 구조물이기보다는 개념적 해석의 내용을 건축적으로 옮겨놓은 2차원적 기하 도상에 가깝다. 일찍이 실무보다 이론에 치중했던 헤이덕의 이러한 관념적 건축은 일련의 계획안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럼 그의 몇 가지 계획안을 통해 그의 건축적 성향을 알아보도록 하자.

가) Texas House Series – Texas House 1 (1954~1963)

이 계획안에서는 그의 기하 조작을 잘 보여주고 있다. de Stijl, Mies, Terragni, Wright의 공간 모델들을 혼합적으로 차용하고 있으며 이 차용된 기하입방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그 속에서 상호간의 조합적인 관계를 형성한 후 기하 입방체 내에서 점, 선, 면의 분할을 통해 복합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나) Diamond House Series – Diamond House B (1963~1967)

이 계획안 역시도 육면체를 출발점으로 삼아 여러 단계의 기하 조작 과정을 거쳐 하나의 복합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름모의 사선 구도를 놓고 고민했던 Mondrian과 Doesuburg의 구성 분할 체계가 십자 구도를 갖는 육면체 윤곽 속에 중첩되어 담겨져 있다. 분할을 담당하는 벽체 자체는 de Stijl과 같은 면 조작 기법으로 처리하였고 실내 전체의 좌표 구도는 Wright의 공간 분절(articulation)을 기본 모델로 삼아 사선 격자가 불규칙하게 확산되도록 처리하여 미로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헤이덕은 실을 공간 사이의 순환 체계로부터 형성되는 영역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 계획안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에서 자주 보여 지고 있다.

존헤이덕 Diamond House Series

다) 1/2하우스

원, 사각형, 삼각형의 세 가지 기본 기하 형태를 반으로 나눈 후 축을 이용하여 이것들 상호간의 위상적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하나의 건물을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처리는 기본 기하 형태를 3차원적으로 축조하여 건축적 질서를 얻으려는 기존의 상식과 반대되는 조형 생성 논리이다. 그 대신 헤이덕은 이러한 기하 형태들의 조합에 1/4, 1/2, 3/4 등과 같은 숫자의 명칭을 붙임으로서 현대 문명하에서 인간 존재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건축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위와 같은 분수가 암시하듯이 현대 문명에서 불완전한 상태로 존재하는 인간 개체는 일차적으로 기본 기하 형태가 주는 완결적 질서에 의해 존재적 근거를 획득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이러한 개체들 사이의 조화로운 위상적 관계에 의해 항구적 질서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라) 북동남서 하우스(North East South West House)

헤이덕은 르 코르뷔제의 빌라 모델에 색채 요소를 도입하는 처리를 통하여 더욱 직접적으로 인간의 존재 문제에 대한 건축적 고민을 표출하고 있다. 이 건물에서 헤이덕은 십자 축의 네 팔에 각각 하나씩의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모델을 배당하고 있으며 그 결과 대지는 네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진다. 또한 십자 축에 건물이 더해지면서 전체 도구는 바람개비 같은 회전성을 갖는 나선형 구도로 발전하고 있다. 네 방위에 나선형의 회전성을 갖는 나선형 구도로 발전하고 있다.

마) 1/4하우스 D(1/4 House D)

축을 이용하여 1/4원, 직각삼각형, 정사각형의 기본 기하 형태들의 구성

바) Cooper Union Foundation Building Rendvation (1975)

극히 드문 그의 실무 작업 중 하나인 이 계획안에서는 실내에서 자유 벽체의 개념으로 해석되고 있는 Le Corbusier의 계단 어휘를 차용하여 반복 사용하고 있으며 Le Corbusier의 건축 강령을 보다 자유롭고 기교적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내부 공간 구성에 있어서의 헤이덕의 건축관을 엿볼 수 있다.

4) 작품 분석

가) The Mask of Medusa (1998)

이 작품은 1979~1983년에 계획되었으며 후기의 설화 건축적 성향이 반영되어 있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하고 있으며 ‘Geometric Mask, Theatre Mask, Shelter Mask’의 3부작 중 일부로 ‘Shelter Mask’에 해당된다. 메두사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 마녀들(Gorgons) 중 하나로 메두사의 대리석 마스크는 조각예술의 걸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주변과 대조되는 검은 톤의 목구조인 이 구조물은 각종 문화 공연 행사를 할 수 있는 일종의 무대라 할 수 있다. 헤이덕의 이런 건축물과 조형물의 중간자적인 구조물들은 오슬로, 베를린, 아틀란타 등에도 계획되었다.

나) Bye House – Wall House 2 (2001)

네덜란드의 그로니겐 지역에 위치한 이 작품은 1968~1974년의 Wall House 연작 중 하나로 최초 미국의 코네티컷을 대상지로 1973년에 계획되었으며 긴 전개 과정과 공사의 지연으로 작가가 타계한 이듬해인 2001년에 완공되었다. 이 작품은 개별 요소들로 이루어진 복합체에서의 공간과 시간의 물리적 직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이론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Wall은 현재를 통한 과거에서 미래로의 물리적 전이, 후면과 전면, 폐쇄와 개방 사이의 전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측면에서 approach하게 되어 있어 entrance가 바로 나타나지 않으며, 후면에 위치한 출입구로 진입하여 긴 복도를 지나 Wall의 반대편에 다다르면 넓게 트인 전망이 나타난다.

바. 소 결

1) 1970년대를 대표하는 시대적 분위기로서 합리주의적 경향을 내포함

1960년 이후 미국 경제의 침체를 계기로 하여, 서양 건축에는 1970년을 기점으로 1920-1930년대 추상 아방가르드 건축의 부활을 통해 모더니즘의 엄격한 순결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새로운 시대 정신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합리주의적 건축관은 이러한 상황반전을 이끈 핵심적 사상이었다. 이런 가운데 뉴욕 파이브 건축 역시 이 당시의 보편적 건축관이었던 합리주의 건축관을 배경적 개념으로 공유하였다.

2) 모더니즘 거장들의 백색이상주의, 합리주의, 모던 – 리바이벌의 역사관을 추구함

1960년대를 거치면서 르 꼬르뷔제, 미스 반데 로에, 월커 그로피우스등의 모더니즘 거장들이 타계하면서 감상적인 노스텔지어 양상까지 띠며 확장되었다. 더욱이 1970년대는 1960년대의 조직적인 탈모더니즘 건축 운동이 한번 있은 뒤여서 뉴욕 파이브 건축의 모던 리바이벌은 네오모더니즘의 양상으로 전개 되었다.

그들은 르 꼬르뷔제를 향하고 있었다. 실제 그의 작품에는 1920년대의 형태 언어와 건축구성의 5원칙, 도미노 원리등 모두 사용됨을 알수 있다, 하지만 르 꼬르뷔제의 건축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재해석의 입장에서 이미 과거의 양식이 되어버린 모더니즘에 개연적 논리 구조위에 복합공간이라는 새로운 건축적 가치를 추구한 점에서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3) 백색 순결주의를 추구함

전통적 상징 체계가 모두 지워진 순수 조형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화이트라는 상징적 이름으로 불리워졌으며, 여기에 대비되어 문화적 색깔을 나타내려는 대중 건축운동의 건축관인 그레이라 불리는 운동과 대립되는 관계가 되었다. 이 화이트 건축은 가치 중립적인 기하형태의 조작만으로 선험적 절대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이상주의적 조형관을 배경으로 갖는다.

4) 미국만의 독특한 모더니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음.

과거에 유럽국제주의 양식을 미국의 전통에 맞게 변형시켜 받아들여 정제된 논리 구조에 기초한 기하 형태주의로 나타나게 되었다.

5) 복합공간을 구성하는 특징을 가짐

1960-70년대에는 화이트와 그레이로 대표되는 추상 대 구상의 대립구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두 경향을 하나로 묶어 연속적 흐름으로 이어주는 복합공간이라는 공동의 고민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80년대를 넘어서도 계속 되고 있으며, 리차드 마이어의 바로셀로나 현대 미술관에서 나타나는 겹공간 사이의 복합영역을 추구하는 공간관이 발견되고, 여러겹으로 형성되는 공간구조속에 기하 충돌, 미로, 좌표, 질서, 매스대립, 빛 조작 등과 같이 여러 종류의 복합 공간 기법이 종합적으로 시도 되고 있다.

4. 결론

1960년대의 미국은 정치적 다원화, 대중 소비사회의 등장, 기술의 발달로 인한 혼란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러한, 전반적인 위기적 상황하에서 예술가들은 혼란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피상적인 외적 현상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어, 건축가들은 1920년대 유럽의 철학적 이상주의로 돌아감으로써, 형태의 순수주의를 꾀하고자 했다. 특히, New York Five라 불려지는 Peter Eisenman, Richard Meier, Chales Guathmey, Michael Graves, John Hejduk 등 5인의 건축가들은 이러한 의도로서 Le corbusier의 백색시대의 건축어휘에 의존하여 작품 활동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일종의 Utopia를 꿈꾸며, Cubism회화에서 보여지는 동시성과 투명성, Le Corbusier의 Purism 회화가 주장하는 기계 형태적 순수성을 받아들인다. Le Corbusier는 New York Five 이전 시대의 대가였고, 그의 영향력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New York Five가 함께 활동하던 초기작품에 한정해서 보여지는 백색의 기하학을 바탕으로 한 순수입방체와 그들이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근대 건축 어휘들 때문에 다른 건축가나 비평가들로 하여금 이들 5명을 스스럼 없이 Neo Corbusian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이 가능했지만, 결국은 5인 중 가장 Corbusier적이라고 하는 Richard Meier 마저도 자신을 Neo Corbusian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들의 건축에 있어서 Le Corbusier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결국, 사상적인 혹은 관념적인 면에서 Le Corbusier를 따랐다기보다는 형태와 공간 구성에 있어서 Le Corbusier가 제시했던 대안들을 더욱 세련화하고, 현대의 상황과 다양한 요구, 개인적인 건축논리에 따라 재구성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단순한 모방과 계승이 아닌 형태의 재해석이라는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건축을 대함에 있어서 형태논리와 주장에 관계없이 건축의 본질을 획득하려는 그들의 끊임없는 자세인 것이며, 그러한 것이야말로 오늘날까지 New York Five가 서로 다른 각자의 이름으로 현대건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Le Corbusier가 자신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차세대의 건축가들에게 ‘보이지 않는 힘’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끝.

한때 관심 많았던 뉴욕5건축에 대한 글인데 이렇게 다 올리고 보니 좀 더 열심히 할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가지 내용을 많이 쓰려다 보니 두서도 없고 양식도 조금씩 다른게 참 아쉽네요. 다음 글들은 잘 정리 되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내용으로 다시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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