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포스트&레이트 모더니즘 건축에 대해 조사했던 글을 올려보겠습니다.

해**퍼스 에도 올렸었는데 글 다 내렸고..다른 블로그에도 시험 삼아 올려봤었는데요.

요 블로그에 건축 조사 내용들을 넣고 앞으로도 글을 올리려다 보니 얘가 없으면 안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이 워드프레스 블로그에도 올려보겠습니다.

오래전에 썼던 자료라서 다소 안맞을 수도 있고 지금과 다른 관점일 수도 있고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참고하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서론

‘포스트모던’이란 말은 최초로 문학과 관련해 1971년에 처음 사용되었고, 시각 예술에서는 찰스 젱크스가 1970년대의 건축현상을 특징짓는 말로 사용하였던 것을 미술 비평가들이 미술에도 적용하여 사용함으로써 30여년의 역사를 가진 어휘가 되었다.

미국 건축이론가 찰스 젱크스(charles Jenks) 의 관점에 따르면 근대건축이 간과하여온 형태 의미론적 측면과 지역문화와의 연속성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역사와 전통을 참조하여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는 탈근대주의(Post-Modernism) 건축과 근대건축의 구조, 기능, 기술 등의 합리적 해결방식을 받아들여 현대의 기술과 함께 극도로 발전시킴으로써 새로운 하이테크 미학을 창조하려는 후기근대주의(Late-Modernism)건축의 두가지 흐름으로 구분된다.

본 글에서는 포스트&레이트 모더니즘이 갖는 일반적 배경과 건축사적 형성배경, 근대건축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반발로 일어나기 시작한 포스트&레이트 모더니즘의 내용, 특징과 한계에 대해서 나름의 생각으로 짚어보겠다.

2. 근대건축과 포스트 모더니즘

가.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해

포스트모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은 주로 20세기 후반의 예술이나 사회의 양상을 논하기 위해 다양한 문맥에서 쓰이는 용어이다. 통일된 정의는 없지만, 주요 문맥은 보통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예술분야에서, 20세기 전반의 ‘모더니즘’에 대한 응답으로 전개된 20세기 후반의 문학․미술․건축 등을 일컫는다. 이러한 장르들이 특히 주목받는 것은 각각의 분야에서 ‘모더니즘’이 비교적 확실한 윤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출현한 사회나 경제의 새로운 양태를 의미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도 20세기 전반에 발전한 산업기술이나 대중문화에 비해 한층 진전되고 고도화한 새로운 단계를 지시하는 것으로 포스트 모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세 번째는 첫 번째, 두 번째를 대상으로 한 이론적 고찰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경우인데, 좁은 의미로는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포스트모던의 조건>, 1979)로 대표되는 사상을 의미한다.

포스트(POST)란 접두사는 「_이후의」 「탈」 이라는 긍정 적 의 미와 부정적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생은 변화하는 세계관과 근대건축의 비판에서 기인하였다. 20세기에 진입하면서 현대 물리학은 새로운 자연관을 제시하였고 이에 따른 세계관은 점차 다른 학문분야에도 받아들여지고, 고전적 과학방법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새로운 문화운동으로 전개 발전되었다.

나. 근대건축의 반발로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1) 근대건축의 문제점

가) 관계의 상실

근대 건축은 산업혁명 이후의 급격한 도시화와 이에 따른 도시의 무질서하고 비위생적인 거주환경에 대한 적절한 계획 및 통제의 필요성, 그리고 구제도의 불합리하고 비민주적인 구속 및 속박으로부터 탈피하고자 일어난 움직임의 결과이다. 따라서 근대건축의 두 가지 주된 과제는 일찍이 과거시대에 경험할 수 없었던 양적인 문제에 대한 효과적이고도 경제적인 대량생산의 기술적 체계 확립과 구제도의 속박과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자율적인 이론적 근거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근대건축의 특징은 한마디로 설정된 원칙이나 그 기본개념에 충실하면 그뿐 그 어떤 외적조건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과거의 건축에 오랫동안 내재하여 왔던 문화, 전통, 역사, 인습, 풍토, 사회적 상황뿐만 아니라 그 건물이 처해 있는 도시나 주변 환경과 그 어떤 관계를 갖지 않는다.

과거의 건축에 사용되었던 상징, 장식 및 기념적인 것이 배제되고 대신에 효용이나 기능만을 중시하게 되었으며, 건축의 형태도 여러 가지의 기하학적 형태가 독자적으로 세워질 수 있었으며, 그 결과 국제주의 양식이 출현하였으며 근대건축의 자율성의 원리에 의한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근대건축의 원리에 의해 그 형태는 프랑스의 빌라 사보아는 규모만 다를 뿐 우리나라에서도 그 형태는 같아질 수 밖에 없다.

근대건축의 원리는 합리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곧 보편적인 것이 되고, 따라서 그러한 원리의 적용은 주어진 상황에 관계없이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의 한계내지는 논리의 내적 모순을 표출함으로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지역성 및 장소성을 외면하였다. 이는 도시공간의 상실로 이어지고 과거 오랫동안 도시의 구성요소로 쓰여 왔던 길, 마당, 광장 등과 같은 구체적인 공간 대신에 경제적 공간, 합리적 공간, 총체적 공간등과 같은 어휘로 표현되었다. 오늘날 도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이러한 공간 구성요소로서의 상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르꼬르뷔제의 빛나는 되시, 여의도 시범아파트 조감도

가) 획일성에 의한 메마름

근대건축의 결과로서의 건축 및 도시환경은 획일성에 의한 메마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근대건축이 구시대의 불합리한 구속 내지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자율성에 그 논리적 근거를 두고 있기는 하나 현실적으로 경제성의 추구를 위해 다양성이 배제됨에 따라 다양한 구성 요소로서 이루어지는 무수한 이야기의 가능성을 갖을 수 없었다.

(지금 보니 생각보다 괜찮은데..;;;)

2) 근대건축의 반발로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비평가 찰스 젱크스는 “1972년 7월 15일 15시 32분을 기하여 근대건축은 그 운명을 다하였다”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미국의 Saint Louis에 있는 Puritt-Igoe 주거단지의 비극적인 폭파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 주거단지는 가장 진보된 근대건축의 이론에 의해 계획 설계되어진 국제현상설계의 당선안을 실현시킨 주거단지로서 건축 잡지에서 극구 칭찬했던 프로젝트였지만 불행하게도 여러 가지 매우 부정적인 사회문제를 야기시킴으로써 실현된 지 얼마 안되어서 폭파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이 근대건축이론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점을 노출시킴으로써 더 이상 그 논리나 원리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는데, 이는 새로운 시대에서 사람들의 삶속에 내재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를 탄력성 있게 수용하지 못하는 근대건축의 획일성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의 발생은 근대건축의 자율성으로 인해 반영할 수 없었던 주민들의 삶 그리고 그들과 환경간에 내재해 있는 복잡하고 다양한 관계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필요성이 증대 되면서 근대건축도 외적상황의 변화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에 대한 인식, 획일성에 따른 도시환경의 메마름에 대한 반발로 비롯되었다. 건축은 다른 분야보다도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성을 맺고 있어,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실용적인 욕구와 필요성을 민감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다. 근대 건축 디자인은 인위적 환경의 시각적 무질서, 기계론적 미학에 의한 형태의 단조로움과 의미의 결여, 과거와의 단절, 건축의 상징성 상실 등 제반문제를 야기 시켰다. 도시의 황폐화 및 질 낮은 환경으로 기존환경과의 부조화가 생기고, 추상 미학과 기계 미학의 산물인 획일성과 비인간화에 따른 거주자의 아이덴티티의 상실과 박탈, 그리고 장소성의 결핍으로 국제주의적 양식의 추진력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이에 대한 해 결책으로 보다 포괄적 이고 휴머니즘적인 접근을 통하여 변모해가는 사회에 대응하기위한 현대 의 사조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더니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모더니즘의 원리를 거부하고 새로운 원리를 추구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의미의 다양성(Multivalence), 상징성 (Symbolism), 장식성 (Ornamentation), 회화성 (Picturesqueness), 인유 ( Allusion), 역사주의 (Historicism),이미지(Imagery) 등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사용하고자 시도하고 있는데, 이러한 태도에 공통되고 있는 것은 첫째, 모더니즘의 배타적인 디자인에 반대한다는 점과, 둘째, 디자인을 언어로 보고 그 의미의 풍부성을 위해 포괄적 디자인 철학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지역적 맥락(Context)에보다 적합하게 하고 디자인의 상징과 의미회복을 통하여 대중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를 제시하려고 시도하는 일련의 운동이다.

프랭클린 코트, 고스트 하우스와 포틀랜드 빌딩의 역사적 요소의 반영

따라서 근대건축이 구시대의 반발로 나타났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건축의 취약함과 메마름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것으로 과거역사의 재인식 및 회복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푸르이트 이고에 (Pruitt-Igoe)는 1951년 미국건축가협회(AIA)의 주관으로 열린 국제현상설계에서 일본 건축가 미노루 야마자끼의 안이 당선되어 1954년에 완성되었다. 57에이커 부지에 11층 공공아파트로 총 33개동, 2,762세대, 그리고 12,000여명의 주민이 이주하기로 계획되었다. 르 꼬르뷔지에가 주창한 ‘빛나는 도시’의 연장선상에 서 있었던 모더니즘의 정상, 푸르이트 이고에는 그 이름에 걸맞게 미국건축가 협회에서 건축상을 받았으며, 건축미디어로부터 많은 관심과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에 새로운 삶을 건축하고 담아낼 것 같았던 푸르이트 이고에는 완공된 지 18년 만에 그 생애를 마감하였다. 이 건물은 ‘근대건축가국제연맹(CIAM)’과 르 꼬르뷔지에의 주요 설계지침을 반영한 것이었기에 건축가들에게 더욱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건물이 완공되고 철거되기까지, 입주율이 60%를 넘은 적이 없었고, 1970년에 이르러서는 전체 건물 33개동 중에서 27개동이 빈집으로 전락하더니, 결국에는 1972년 $300 million (3억달러) 이라는 기하학적인 재산손실과 함께 철거되었다.

이 건축물의 실패원인으로는 1)거주자가 거의 흑인들로 구성됨으로써 주거환경의 개선이 오히려 슬럼으로 변해버린 점, 2)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상호적이고 공통적인 관심을 계획에 반영하지 않아 사회적 교류를 할 수 있는 공간의 부족, 3)공공주택관청의 불공정한 행정지도, 4)소유자 부재의 공간과 관청의 감시 부족으로 공공공간이 범죄의 장소로 변질된 점, 그리고 5)녹지대의 결여와 주변지역으로부터의 고립으로 인한 개인적 소속감을 갖지 못하게 된 점을 들 수있다.(1972년 7월 15일 15시 32분 부터 2년간 30여개동 폭파)

포스트&레이트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글은 3번 정도에 나눠서 올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축 관련 글 링크_뉴욕5건축탐구

Similar Posts